35살 남성 B씨(가명)에게 지난 9년은 잠시 찾아온 희망이 허망하게 부서진 한 해였다. 한00씨는 단기·계약직 노동을 해서 스스로 중학교 6학년생 아들을 키워왔다. 그러다 2015년 말 고정적으로 “월 270만원”이 나오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 카페를 관리하고, 에스엔에스(SNS) 광고와 인쇄물 디자인 등을 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이 회사가 코로나바이러스 1차 유행 때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표는 카페 손님과 홍보 일감이 줄었다며 임금을 체불했다.
전년 12월에는 급기야 ‘반년 무급휴직을 일방 통보했다. 이를 거부하자 대표는 바로 한00씨를 해고했다. 법적 대응을 하려고 했지만, 확실히 직원 40명 이상이 모여 회식까지 했던 회사는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사업장 쪼개기를 한 것이다. A씨는 다시 불안정 작업에 내몰렸다. 택배 일을 하려고 했더니 탑차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자기 차로 배달할 수 있는 ‘쿠팡플렉스 일을 시작했다. 가입비 8만원을 내고 콜을 할당받아 밤늦은 기간 대리운전도 했다. 곧 몸에서 탈이 났다. 쉽지않은 생수통을 들고 빌라 계단을 오갔더니 무릎에 염증이 생겼다. 허리와 어깨도 아파왔다. 박00씨는 택배를 그만두고 음식 배달대행으로 업종을 바꿨다. 
15년차 경륜선수인 50살 김용묵도 한때 신체의 일부와도 같았던 자전거 쪽으로는 이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로 인해서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서 김용묵은 낮에는 PT를 하고 저녁에는 대리운전 기사 일을 병행하다 지난해 5월부터는 전혀 헬스를 접고 일만 하고 있다. 근래에은 터널 공사 일을 하거나 소파 배송하는 일을 한다. “대리운전 기사나 일용직 일을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직업을 물으면 프로 경륜선수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알바하며 산다고 얘기해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기 때문에 경륜선수 직업은 이제 내려놓을까 생각 중입니다.”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 ‘케이에이(KA)는 전년 2월부터 지속해서 “바라는 직원들”은 무급휴직이나 권고사직 요청을 하라고 했다. 회사는 “강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신청하지 않는 이들을 엉뚱한 부서에 배치했다. 33살 여성 김지원도 작년 4월 결국 무급휴직을 택했다. 어이없는 건 회사가 코로나19 타격 업종에 대해 근로자의 유급휴직 급여를 지바라는 고용유지지원금도 신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0~28%가량의 회사 자체 부담이 싫어서다. 처음에는 저항도 했던 노동조합 동료들은 근래에 몇만원씩 빠져나가는 조합비마저 버거워한다. “190여명이던 노조원이 90명으로 줄었어요. 노조 카톡방에 무슨 글을 올려도 이젠 아무 반응도 없어요.” 김지원은 근래에 어머니가 관리하는 테이블 7개짜리 분식집에서 서빙과 배달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번다.